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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위트릴로_예술, 자본 넘어 자유를 그리다: 수잔프리즘 No.2

 

위트릴로_예술, 자본 넘어 자유를 그리다: 수잔프리즘 No.2

소설 『달과 6펜스』의 모델이었던
화가 고갱(1848~1903)이 나쁜 남자였다면,
화가 위트릴로(1883~1955)는
수잔 발라동에게 약한 아들이었다.

고갱은 예술을 위해서 처자식을 버린 가장이었지만,
위트릴로는 삶을 구원하고자 예술에 헌신한 아들이었다.
어머니 수잔 발라동(1865~1938)과 마찬가지로 사생아로
태어난 위트릴로는 아버지의 부재를 알코올로 채운다.


알코올 중독에 빠진 위트릴로는
그림에서 자기 치유와 구원을 스스로 일구어낸다.
특히 고향 파리에서
몽마르트의 골목과 건물 그리고 교회를 즐겨 그린다.

화려한 유흥과 극심한 가난이 공존하는 몽마르트에서
위트릴로는 자신만의 백색시대를 열어간다.


특히 물감에 석고와 모래를 섞어 독특한 질감으로 그려진
백색의 성당은 세속적인 몽마르트의 쓸쓸한 풍경 속에서
결백의 상징이 아닌 상처를 감싼 붕대처럼 포근하게 서 있다. 


고갱의 후기 작품을 떠올리지만,
위트릴로의 백색은 도달해야 할 영적인 기념비가 아닌
삶의 이정표로 서 있다.


수잔 발라동의 <위트릴로 초상화>는
(보살핌이 필요한 아들이 아닌)
세상을 직시하고 자신만의 시선으로
그림을 그리는 동료 화가로서 인정하고 있다.


                               - 장한섬(오페라 연출가)

 


플레이캠퍼스 2026정기연주회
예술, 자본 넘어 자유그리다

렉처콘서트(2차)_위트릴로
2026.5.13(수) 7:30pm
장소: 플레이캠퍼스
인천광역시 중구 답동로 30번길 9


김신호 테너&피아니스트 최근정
진행_장한섬(오페라 연출가)

 

 

 

화가 위트릴로(1883~1955)가 태어나 성장한
프랑스 파리는 왕과 귀족이 아닌 법과 시민의 도시로 성장한다.
그 성장통은 아래와 같다.


1842년에는 프랑스 리세(Iycee : 국립고등학교)의 교수 중 10퍼센트가 아직도 ’명문‘ 출신이었던 것이 1877년에는 명문 출신이라고는 한 사람도 없었다. 1868년 프랑스는 1830년대보다 조금밖에 늘어나지 않은 대학입학 자격시험 합격자(bacheliers)를 배출했지만, 그들은 그전보다 훨씬 많이 은행, 상업, 성공한 저널리즘에 투신할 수 있었고, 1870년 이후에는 직업적인 정치가로 정계에 들어갈 수도 있게 되었다.
 그뿐이 아니다. 막상 적색혁명과 맞부딪치자 민주주의적 급진파였던 지식인들까지도 ’민중‘에 대한 순수한 동정과 자신들의 재산 • 금전에 대한 감각의 두 갈래 사이에서 분열하여 곧잘 미사여구의 말재간 속으로 후퇴하는 경향이 있었다. 자유주의적 부르주아지와는 달리 이들은 입장을 바꾸지는 않았다. 극단으로 우경하는 일은 결코 없었고 그저 흔들흔들 동요한 것뿐이었다.

 

                                                 - 에릭 홉스봄 『자본의 시대』 (한길사, 1998, 정도영 옮김) 103쪽

 


1870년의 파리는 1850년의 여건과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그리고 그 변화는 장기적이고 뿌리가 깊은 것이었지만, 파리 역사에서 또 다른 큰 사건, 즉 1871년의 파리 코뮌을 탄생시킨 봉기를 미리 막을 만큼은 아니었다. 하지만 1848년과 1871년의 혁명 사이에는 연속성도 있지만 그들을 갈라놓는 요인도 많다. 제국 치하의 18년은 오스망의 작업이 도시의 물리적 바탕을 절개하고 개조하는 과정에서 파리인들의 의식 속 깊이 각인되었다.


                                  - 데이비드 하비  『모더니티 수도, 파리』  (생각의 나무, 2005, 김병화 옮김) 149쪽


 


뱀발(蛇足)


프랑스 파리의 오스망(1809~1891)과 비슷한 인물이
미국 뉴욕의 로버트 모세스(1888~1981)다.
이들은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각’으로
도시를 재편한 강력한 도시개발자였다.


훗날 불도저로 불린 대한민국 서울시장 김현옥(1926~1997)은
군사정권 하의 속도전이자 한국식 “빨리빨리“ 개발주의를 추진한다.


김현옥 서울시장 당시 현대건설 간부 이명박은
여의도 윤중제, 세운상가, 청계고가도로 등
서울의 인프라 건설 현장에서 활동하며 도시 개발 경험을 축적한다
(김현옥 서울시장은 와우 아파트 붕괴 사고로 사퇴한다).


명품도시와 경제수도를 외친
안상수(민선 3~4기)와 송영길(민선 5기) 인천시장은
도시 브랜드와 국제 경쟁력을 내세운 인천판 개발주의였다.


이러한 도시개발의 흐름 속에서
”예술, 자본 넘어 자유를 그리다“ 진행.


’세계‘라는 보편성보다 ’지역‘이라는 특수성 속에서
위트릴로 그림과 수잔 발라동의 삶 조명.